공원의 역사
일제강점기의 역사(1910~1945)
- 애초에 지역민들의 기름진 농지와 주거지였던 범전리 일대의 부지 또한 일제의 식민지 권력에 의해 1910년부터 토지조사사업이란 미명 하에 동양척식회사를 비롯한 각종 토지회사와 일본인 유력 자본가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며 따라서 대다수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됨
- 1920년대 일본 자국의 경기부양에 힘입어 독점 산업자본이 조선으로 투입됨에 따라 부산진, 서면 등 공업지구가 생겨나게 되고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근대식민도시로 성장하게 됨. 이와 아울러 도시의 성장과 근대화를 통해 일본인 중산층의 소비와 여가 욕구가 증가함에 따라 동래온천과 같은 위락시설과 경마장 등 오락 시설이 전국적인 붐을 이루게 됨
- 부산 서면경마장도 이와 때를 같이하여 1930년 준공되었는데 범전리 일대의 부지를 선정한 이유는 부산부와 동래군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 편리성, 일본 자본가들의 부지확보 용이성, 부산부의 영역 확장을 위한 사전 작업의 필요성 때문이었음. 아울러 경마장의 조성은 조선총독부의 세수 확보와 더불어 군사적 목적의 사전 기지화 작업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음
-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경마대회의 기능은 대폭 축소되고 병참기지인 부산항의 배후 군용지로 서면경마장을 군사기지화하여 일본군 10288기마부대를 설치하여 군사용 마필을 훈련 및 지원하게 됨. 한편 1941년 태평앙전쟁이 발발하자 제72병참경비대를 설치하여 군수물자 수송의 안전을 확보하고 초기 전투 승리로 인한 남방지역 연합군 포로를 관리하기 위하여 1942년 임시군속훈련소를 설치하여 포로감시원을 배출함. 이후에는 이 부지가 일본군 군수품 야적장으로 활용 됨